코르도바

 

네 가지 문화의 도시

Plaza de Capuchinos, Córdoba

1994년, 코르도바세계문화유산으로 공식 선언되었습니다. 이 도시의 역사적 유산은 세계적으로 중요했으므로, 유네스코는 메스키타-대성당(1984) 뿐만 아니라 주변을 둘러싼 도시까지 세계문화유산에 포함시켰습니다. 2012년, 코르도바 안뜰 축제 또한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시간 여행. 코르도바는 한때 번성한 강력한 문명의 주인공이었던 모습을 보여줍니다. 로마인, 이슬람교인, 유대인, 기독교인이 코르도바의 유산과 문화, 풍습 및 전통에 깊은 족적을 남겨 놓았습니다.

네 가지 문화의 도시 코르도바는 이들 구성원 사이에 때때로 발생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현명하게 그들의 차이를 덮고 평화로운 환경을 만들어 예술과 과학을 발전시켰습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936년에서 1031년 사이이며, 이는 가장 훌륭했던 칼리프의 영광스러운 시기와 일치합니다. 세 문화 사이의 암묵적인 합의로써 수도와 주변 도시는 그들 사이의 이해에 초점을 확실히 맞추었습니다.

로마 시대 코르도바. 도시로서의 모습은 기원전 2세기 중반, 집정관이었던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에 의해 갖추어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도시의 모습을 갖춘 그 즉시, 코르도바는 히스파니아 울테리오르(Hispania Ulterior, 이베리아 반도의 남서부 지역)의 수도로 여겨졌습니다. 더욱이 이 땅은 로마 제국에 세네카 -로마 치하 히스파니아의 코르도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과 그의 조카 루카노의 작품 속 저술가와 철학가를 제공했을 것입니다.

Patios de Córdoba
Torre de la Mezquita Catedral de Córdoba

이슬람교 시대 코르도바. 711년, 서고트족의 승리 후 얼마 되지 않아 이슬람교인들은 코르도바를 수도로 세 이슬람 세계의 새로운 주를 만들어 알-안달루스(Al-Ándalus)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슬람교인이 지배하던 때, 코르도바의 가장 큰 업적은 아브드 알-라흐만 3세가 세웠으며, 929년 그는 다마스커스에서 독립한 칼리프의 지위를 취하고 코르도바를 유럽에서 가장 번화하고 세련되었으며, 인구가 많은 도시로 바꾸었습니다.

유대인의 코르도바. 1236년, 페르난도 3세가 코르도바를 기독교 국가로 수복하고, 기독교인과 이슬람교인 및 유대인에게 평등한 지위를 주는 특별법을 선언했습니다. 13세기 후반까지 공동생활은 평화로웠습니다. 카톨릭 부부 왕의 통치 기간 동안 창시된 종교재판소는, 15세기 말 경에 시작되어 유대인이 기독교로 개종하도록 박해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1492년, 유대인 추방을 명령했습니다.

기독교 시대의 코르도바. 13세기가 되고, 이슬람교인 공동체에 대립을 끝낼 것이 공표되었습니다. 페르난도 3세가 1236년 칼리프 시대의 수도를 해산시킨 것입니다. 잇따른 왕권 통치는 현재의 코르도바까지 이어집니다. 오스트리아 치세 하의 코르도바 (1516-1700), 부르봉 왕조의 코르도바 (1700-1900)과 20세기의 코르도바 (1900-2000)입니다.

현대의 코르도바. 20세기 중반부터 코르도바는 대학 창설에 기초를 둔 경제, 사회 및 문화 기반 활동과 교통 기관의 사회기반시설 개선 (초고속 철도를 선두로), 국제 관광의 참조 대상이 되는 세계문화유산 지정 선언 등이 의미 있게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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